오늘은 또 하나의 전설적인 투수 월터 존슨(Walter Johnson)을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월터 존슨은 역사상 최고의 투수 중 한명으로 평가받는 투수로 바니(Barney) 또는 빅 트레인(The Big Train)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하고, 사이 영(Cy Young)과 같은 시대 투수입니다.
월터 존손은 1887년 11월 6일 캔자스(Kansas) 홈불트(Humboldt)의 농가에서 여섯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월터 존슨은 14세가 되던 해에 캘리포니아(California) 오렌지 카운티(Orange County)에 위치한 작은 석유도시 올린다(Olinda)로 이사를 가게 되는데요. 그곳에서 그는 근처 유전에서 일하면서 승마와 야구를 병행했다고 하네요. 플러턴 고등학교(Fullerton Union High School) 재학시절에는 산타 아나 고등학교(Santa Ana High School)과의 경기에서 15이닝동안 27개의 삼진을 잡아낸 기록도 있습니다.
월터 존슨은 이후 전화회사에 취업이 되면서 아이다호(Idaho)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와이저 아이다호(Weiser Idaho)라는 아이다호 주 리그(Idaho State League)의 팀에서 회사원과 투수를 병행하게 됩니다. 와이저 아이다호에서 선수생활을 하던 중 스카우터의 눈에 띄여 1907년 7월에 19세의 나이로 미네소타 트윈즈(Minnesota Twins)의 전신인 워싱턴 세너터즈(Washington Senators)와 계약을 체결하고 같은해 8월 메이저리그에 데뷔하게 됩니다. 이후 월터 존슨은 워싱턴 세너터즈 한팀에서만 21년을 뛰고 은퇴하는데요. 그의 기록을 베이스볼 카드 형태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G:출장,W:승,L:패,IP:이닝,H:피안타,R:실점,ER:자책점,BB:볼넷,SO:삼진,SHO:완봉,SV:세이브,WHIP:출루허용률,ERA:방어율
월터 존슨은 21시즌동안 30승 이상 2번, 20승 이상을 10번을 기록하며 다승왕 6번, 방어율왕 5번, 300 탈삼진을 2번이나 기록하며 탈삼진왕 12번, 승률왕 2번, 최다이닝 1위 5번, WHIP 1위 6번, 최다완투시즌 6번, 최다완봉시즌 8번, 삼진/볼넷 비율 1위 9번, WAR 1위 7번 등 어마어마한 기록들을 남겼습니다. 1913년과 1924년에는 다승, 방어율, 탈삼진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며 시즌 MVP를 받았고, 1918년에도 다승, 방어율, 탈삼진 트리플 크라운을 기록했습니다.
통산기록으로 봐도 다승 417승으로 사이 영에 이어 역대 2위, 통산 방어율 2.17로 역대 12위, 통산 탈삼진 3,509개로 역대 9위, 5,913.3 이닝으로 역대 3위, 선발출장 666번으로 역대 13위, 총 531회 완투로 역대 5위, 총 110회 완봉으로 역대 1위의 엄청난 기록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다른 기록들은 후대 투수들에 의해 깨져왔지만 통산 110회 완봉 기록은 아직까지 역대 1위 기록으로 남아있고, 현재 플레이 환경상 현실적으로 깨지기 힘든 기록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월드시리즈에는 1924년, 1925년 2번 진출해서 모두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습니다. 그 당시 월터 존슨은 은퇴를 앞둔 노장이었지만 1924년 7차전 마지막에 등판해서 4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팀에 우승을 선물했고, 1925년에도 1차전, 4차전 승리를 따내고 7차전에서도 악천후 속에서 역투했지만 안타깝게도 당대 최고 유격수이자 1925년 MVP였던 로저 펙킨포(Roger Peckinpaugh)의 2번의 에러로 인해 2연속 우승을 달성하지는 못했습니다.
월터 존슨은 83.63%의 득표율로 1936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최초로 헌액되었으며, 최초 헌액자 5명 (타이 콥(Ty Cobb), 호너스 와그너(Honus Wagner), 베이브 루스(Babe Ruth), 크리스티 매튜슨(Christy Mathewson), 그리고 월터 존슨) 중 한명입니다.
2009년 워싱턴 DC(Washington D.C.) 내셔널 파크(National Park) 야구장에 그의 업적을 기려서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오므리 암라니(Omri Amrany)라는 예술가에 의뢰해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정말 공을 던지는 듯한 역동성이 느껴집니다.
월터 존슨은 위 동상에서 볼 수 있듯이 큰 키와 긴팔을 이용해서 사이드암으로 공을 던졌다고 하는데요. 공이 너무 빨라서 기차소리가 나는듯 해 빅 트레인이란 별명이 생겨났습니다. 마치 공이 3루쪽에서 오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고, 공이 너무 빨라서 보이지 않는다는 심판도 있었는데 그 심판이 했던 얘기는 타자들도 공이 안보여서 자신이 공을 보지 못하고 판정을 내려도 항의가 없었다고 하는 일화도 있습니다.
월터 존슨은 타자를 맞출까봐 몸쪽 공은 잘 던지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산 사구는 205개로 역대 4위에 올라 있습니다. 헬멧을 아직 착용하지 않았던 당시에는 월터 존슨의 빠른 공에 타자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하기도 하는데요. 심지어 클리블랜드 냅스(Cleveland Naps)의 레이 채프먼(Ray Chapman)은 2구만에 타석에서 내려와버려서 2구 삼진이라는 보기힘든 전설적인 기록이 남아있기도 합니다.
월터 존슨의 구속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고, 구속을 예상해보기 위한 여러가지 시도들이 있었는데요. 대략 86마일(138.4Km/h)부터 100마일(160.1km/h) 까지 다양한 설이 존재합니다. 39세의 월터 존슨과 17세의 밥 펠러(Bob Feller)의 공을 모두 경험했던 찰리 게링거(Charlie Gehringer)는 월터 존슨의 공이 더 빨랐다고 증언하고 있는데요. 최초의 공식 100마일 기록을 가지고 있는 밥 펠러보다 빠르게 느껴졌다고 하니 월터 존슨의 공은 100마일에 육박하거나 상회하는 속도였던 것 같습니다. 월터 존슨은 13년간 직구만 던지다가 부상 이후 속도가 조금 줄어들자 커브를 배워 던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속도가 그렇게 빠르고 위력적이니 변화구가 필요 없었나봅니다.
당시 최고 타자 중 한명이었던 타이 콥이 유일하게 인정했던 투수가 월터 존슨이라고 하는데요. 1907년 월터 존슨의 데뷔시절 그와 대결한 이후 구단에 월터 존슨을 데려와야 된다고 계속 주장했고, 타석에서 월터 존슨을 만나면 얼어붙을 수 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당시 거친 야구선수들이 많았던데 비해 월터 존슨은 매우 부드러운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엄청난 실력에 비해 카리스마를 내뿜는 스타일은 아니었다고 하네요. 타자가 자신의 공을 맞고 죽을까봐 걱정했고, 자신의 사인을 받으러 온 대통령 앞에서 벌벌 떨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다른 스타들에 비해 카리스마나 임팩트가 부족해서인지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최초 5인 중 득표율이 가장 낮았지만, 현재는 메이저리그 최고 투수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 월터 존슨. 그의 사진들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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