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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크리스티 매튜슨(Christy Mathewson)

JakeS_08 2019. 10. 29. 21:35


오늘은 또 다른 전설적인 투수 크리스티 매튜슨(Christy Mathewson)에 대해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크리스티 매튜슨은 역사상 최고의 투수로 불리는 월터 존슨(Walter Johnson)과 같은 시대에 활약한 역사상 최고 투수 중 한명으로 내셔널 리그에서 활약했으며, 아메리칸 리그에서 활약한 월터 존슨과 메이저리그를 양분했던 슈퍼스타였습니다.

크리스티 매튜슨은 1880년 8월 12일 팬실베니아주(Pennsylvania) 팩토리빌(Factoryville)에서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매튜슨은 나이에 비해 항상 큰 편이었다고 하는데요. 결국 당시 야구선수로서는 큰 키인 6피트, 185cm에 195파운드, 88kg의 거구로 자라게 됩니다. 매튜슨은 14세에 야구를 처음 접했고, 대학에서는 야구 뿐만 아니라 풋볼, 농구, 학급회장까지 병행했는데요. 풋볼이나 농구도 팀에서 중심역할을 했다고 하네요.

매튜슨은 1899년 뉴잉글랜드 리그의 야구팀과 계약을 맺었고, 다음시즌에는 캘리포니아 리그의 노포크(Norfolk) 팀에서 20승 2패를 기록했습니다. 그의 활약을 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Sanfrancisco Giants)의 전신인 뉴욕 자이언츠(New York Giants)는 1,500불에 매튜슨과 메이저리그 계약을 맺었고, 그해 바로 선발투수로 데뷔했지만 첫 3경기에서 3패를 기록한 후 노포크로 방출되었습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바로 신시내티 레즈(Cincinnatti Reds)에 지명되었고, 트레이드를 통해 다시 뉴욕 자이언츠에서 선수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후 매튜슨은 뉴욕 자이언츠에서 17년, 신시내티 레즈에서 1년을 뛰고 은퇴하는데요. 그의 기록을 베이스볼 카드 형태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G:출장,W:승,L:패,IP:이닝,H:피안타,R:실점,ER:자책점,BB:볼넷,SO:삼진,SHO:완봉,SV:세이브,WHIP:출루허용률,ERA:방어율


매튜슨은 18시즌동안 30승 이상 4번, 20승 이상을 9번 기록하며 다승왕 4번, 방어율왕 5번, 탈삼진왕 5번, 승률왕 1번, 최다이닝 1번, WHIP 1위 4번, 최다완투시즌 2번, 최다완봉시즌 4번, 삼진/볼넷 비율 1위 9번, 9이닝당 최저 볼넷 1위 7번, WAR 1위 4번 등 어마어마한 기록들을 남겼습니다. 1905년, 1908년에는 다승, 방어율, 탈삼진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고, 1908년에는 다승, 방어율, 탈삼진 1위 외에도 출장게임, 완투, 완봉, WHIP, 세이브도 1위를 기록하는 엄청난 활약을 보여줬습니다.

통산기록으로도 다승 373승으로 사이 영(Cy Young), 월터 존슨(Walter Johnson)에 이어 역대 3위, 통산 방어율 2.13으로 역대 9위, 통산 탈삼진 2,507개로 역대 37위, 4,788이닝으로 역대 18위, 선발출장 552번으로 역대 30위, 총 435회 완투로 역대 14위, 총 79번 완봉으로 역대 3위 등 엄청난 기록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월드시리즈에는 1905년, 1911~1913년 총 4번 진출했지만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Philadelphia Athletics)와 만났던 1905년 월드시리즈만 3번의 완봉승을 거두며 우승컵을 팀에 선물했고,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보스턴 레드삭스(Boston Red Sox),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와 차례로 맞붙었던 다른 3번의 월드시리즈는 총 8게임에서 엄청난 투구를 보여줬지만 야수들의 실책 등으로 인해 2승 5패로 부진하며 팀에 우승을 안기지 못했습니다. 비록 4번의 월드시리즈에서 1번의 성공밖에 거두지 못했지만, 1905년 월드시리즈에서 거둔 3번의 완봉승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라고 하네요.

크리스티 매튜슨은 90.7%의 득표율로 1936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스며, 최초로 헌액된 5명 (타이 콥(Ty Cobb), 호너스 와그너(Honus Wagner), 베이브 루스(Babe Ruth), 월터 존슨(Walter Johnson), 그리고 크리스티 매튜슨) 중 한명입니다.

등번호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37년으로 매튜슨이 선수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등번호가 없었지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1986년 8월 17일 영구결번 선수로 지정하여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습니다. 펜실베니아(Pennsylvania) 팩토리빌(Factoryville)에는 크리스티 매튜슨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그의 동상도 그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제구의 달인으로 불리는 매튜슨은 9이닝 동안 평균 볼넷이 통산 평균 1.6개에 불과했고, 투구수 80개 이하로 완투한 경기가 9경기나 될 정도로 공격적인 피칭을 했다고 합니다. 같은 시대의 월터 존슨이 강속구로 리그를 평정했다면, 매튜슨은 정교한 제구력으로 리그를 호령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유형의 선수로 그레그 매덕스(Greg Maddux)가 매튜슨의 후계자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매튜슨의 69이닝 무볼넷 기록도 제구력의 마법사라고 불렸던 그레그 매덕스가 경신했습니다.

매튜슨은 당시 페이드 어웨이라고 불렸던 스크류볼과 커브를 잘 던졌다고 하는데요. 두 구종을 던질때의 투구폼이 같은데, 공은 서로 반대쪽으로 날아와서 타자들이 상대하기 어려워했다고 합니다. 1900년대 내셔널리그는 뉴욕 자이언츠와 시카고 컵스(Chicago Cups)의 양분체제였는데요, 그의 내셔널리그 라이벌로는 시카고 컵스의 모데카이 브라운(Mordecai Brown)을 꼽을 수 있습니다. 1903년 처음 맞대결을 벌인 이후 총 25번 상대해서 매튜슨이 11승 13패, 브라운이 13승 10패의 박빙의 승부를 벌였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매튜슨은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위로 전쟁에 참전했는데요. 타이 콥, 조지 시슬러(George Sisler)와 독가스 제거, 오염지대 개척 등의 임무를 담당했고, 불행하게도 훈련 중 실수로 화학가스를 흡입하는 바람에 이후 가스 흡입 후유증에 고생했다고 합니다.

준수한 외모와 뛰어난 성적으로 매튜슨은 야구를 신사의 스포츠로 끌어올린 선수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의 별명으로는 빅 식스(Big Six), 크리스티안 젠틀맨(Christian Gentleman), 맷(Matt), 젠틀맨의 헐러(Gentleman's Hurler) 등이 있었다고 하네요. 원조 제구력의 마법사 크리스티 매튜슨. 그의 사진들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